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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Column

MMORPG 게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by 김태현. 2022. 3. 29.

2016년도 Inven Game Conference(IGC)를 참관한 적이 있었다.

들었던 세션들 모두가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세션이면서 사실상 토론에 가까웠던 MMORPG의 미래에 대한 논의였다.

 

 

한국 MMORPG의 미래는 어디로? 5인 토론회 풍경기

한국 게임산업 성장의 토양이 된 MMORPG. 현재는 오버워치나 리그 오브 레전드 등에 밀려 국내 주류의 자리에서는 조금 멀어지게 됐지만 여전히 수많은 게임사들이 다양한 MMORPG를 개발해 유저들

www.inven.co.kr

 

아쉽게도 영상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MMORPG가 처한 문제에 대해 핵심을 명확하게 짚어냈는데,

들으면서도 나도 해당 주제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집으로 돌아와 곧장 관련된 내용을 작성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작성했던 글 (지금은 비공개 상태이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글을 살짝만 손보면 지금도 적용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여

게임들의 리마스터링처럼 다시금 작성하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다소 산통을 깨는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RPG란 장르자체는 MMO랑 결합하기 힘들다.

본래 RPG는 플레이어가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만 MMORPG는 수천명의 플레이어가 주인공인 게임이며, 이런 내용의 시나리오를 만들기란 어렵다.

 

시스템적으로도 많은 인원이 동시에 행동하는 하나의 서버를 구축하는 부분, 경제 구조와 같은 내부 콘텐츠에 대한 고려, 연출의 제한 등 많은 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MMORPG는 한시대를 풍미한 장르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장르이다.

 

최근 로스트아크의 성공 사례가 보여주듯 여전히 MMORPG란 장르는 건재해 보이지만, 이러한 소수의 성공작을 제외하면 예전과 비교했을때 훨씬 적은 수의 MMORPG만이 개발/운영되고 있으며, 신작 MMORPG는 가뭄에 콩 나듯 출시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MMORPG의 부진은 SNS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

 

아바타를 가진 채팅 프로그램

 

MMORPG의 탄생부터 가려면 울티마 온라인이나 에버퀘스트같이 아주 옛적의 게임들을 꺼내야 하지만,

사실상 한국에서 접할 수 있었던 최초의 MMORPG는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와 같은 1세대들이다.

동시에 어둠의 전설, 아스가르드 등 다양한 MMORPG들이 범람했던 시기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들의 메인 콘텐츠는 '노가다'로 불리는 단순 반복 콘텐츠가 메인이었는데,

특히 레벨을 올리기 위해 몇 시간이나 같은 곳에서 사냥을 하는 사냥형 노가다가 메인이었다.

 

노가다를 제외하면 콘텐츠가 거의 없다싶이 할 정도로 당시의 MMORPG는 현재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게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가장 큰 재미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엔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활발하지 않았던 점과, 게임 속 캐릭터를 이용해 유저끼리 다양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결합되어 하나의 매력으로 작용하여 MMORPG는 게임을 곁들인 채팅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이 강했다.(이러한 점에서 메타버스의 전신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시의 MMORPG는 다른사람과 아바타를 통해 소통할수있다는 매력으로 유지되었다.

 

게임이 다소 재미없는 시기가 와도 유저들끼리의 소통이 즐거웠기에 MMORPG는 타 게임에 비해 장수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리니지가 보여준 상업적 성공이 더해지면서 MMORPG 장르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MMORPG들은 저마다의 매력을 보여주었지만, 다들 자세히 뜯어보면 노가다 기반의 콘텐츠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커뮤니티들이 고착화되기 시작하면서 MMORPG는 채팅 프로그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가며 위기가 다가왔지만 WoW의 출시 이후 MMORPG의 틀이 바뀌기 시작하며 이러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육성과 레이드 속 커뮤니티

 

사실 이 파트는 MMORPG의 '현재'에 해당하는 부분이었으나, 처음 작성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 이 내용 역시 과거에 가깝다.

 

현재의 흥행 여부와는 별도로, WoW는 MMORPG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게임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노가다성 측면을 줄임과 동시에, 게임성 자체에 집중하여 '게임이 다소 빈약해도 사람들이 알아서 놀 거야'라는 과거의 관점에서 탈피했다.

 

핵심에는 에버퀘스트에서 시작하고 와우에서 완성된 '레이드' 콘텐츠가 있었다.

레이드는 10~40인 규모로 던전을 클리어하는 콘텐츠로, 현재 모든 MMORPG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콘텐츠이다.

레이드 참여를 목표로, 유저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육성하고, 보스의 기믹을 분석하고, 다른 유저들과 합을 맞춰간다.

 

같이 레이드를 즐기며 합을 맞춰가는 과정은 이전 채팅 위주의 콘텐츠보다 더욱 강한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함께 보스를 잡을 때의 경험은 각별했다.

이외에도 RvR 콘텐츠나 매력적인 세계의 구현 등이 더해진 WoW는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대격변 이전까지는 MMORPG = 와우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되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와우의 레이드나 전장은 많은 사람들과 특정한 목표를 도전하는 재미가 있다.

 

물론 이러한 대성공과 독점적 체제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WoW는 패치를 거듭할수록 레이드 이외의 소셜적인 기능들을 제거해가고 있다.

 

'리치왕의 분노'에서 추가된 던전 찾기 시스템은 유저들의 던전 진입에 대한 허들을 낮췄지만, 다른 서버의 사람들. 즉, 다시는 보기 힘든 사람들과의 연속된 매칭으로 인해 인스턴스 던전에서의 만남은 인스턴트한 관계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러한 변화는 편의성과 맞바꾼 친목적 기능의 약화라고 볼 수 있다.

 

'대격변'에서는 공격대 찾기 시스템의 추가로 서버 내 친목의 장이었던 레이드마저 인스턴트한 관계로 끌어내려버렸다.

물론 라이트 유저 입장에선 경험하기 어려웠던 레이드를 쉽게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역시 소셜적 기능의 약화였다.

 

'드레노어의 전쟁군주'는 사실상 소셜적 기능의 종말이었던 확장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만의 마을인 주둔지를 가지게 되며, 다른 사람과의 교류 자체가 매우 적어졌다. 이러한 하우징 시스템으로 RPG 적 기능은 강화되었지만, 이와 반비례하여 MMO 적인 부분은 감소되었다.

 

와우가 가진 최고의 기술 중 하나인 위상 변화 시스템은 확장팩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발전하였는데,

중요한 장면에선 타 플레이어를 완전히 제거해버리고 필드에서 유저끼리의 아이템 경쟁도 제거해버렸다.

 

결국 MMORPG의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WoW 마저 MMO 적 기능을 서서히 제거하고 있다.

 

편리하지만 타인과의 소통을 줄여가는 콘텐츠들

계산적으로 생각했을 때, WoW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게임이 가지는 소셜적 커뮤니티는 그 빛을 잃은지 오래이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상에선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생겨났고, 소셜적 행위의 만족감을 다른 곳에서 느끼고 온 유저들이 굳이 게임 속에서 소셜적인 부분을 충족시킬 필요성이 사라졌다.

 

이후 많은 MMORPG 역시 편의성이란 이름하에 유저간의 자연스런 만남을 점점 줄여가고, 레이드같은 목표지향성 콘텐츠에서만 만나도록 하고있다. 

 

소셜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MMORPG를 보고있자면, 

RPG 란 장르 자체는 MMO랑 결합하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과연 MMORPG는 사장되는 운명인걸까?

 

 

 

추억은 아름다운 기억

 

게임을 플레이하며 겪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게임은 자신이 가장 잘했던 플레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MMORPG에 한해선 다른 유저들과 함께 겪은 경험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경험이 더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었나 하면 단연 후자일 것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MMORPG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잘 만들어진 MMORPG는 내부에 독자적인 경제와 사회. 이야기가 있고 이는 현실과 유사한 하나의 세계이다.

물론 다른 장르의 게임들도 타인과의 경험이 있지만, 수십, 수백 명과 함께 경험이 가능한 게임은 MMORPG뿐이며, 이때 얻는 경험은 극적이다.

리니지의 바츠 해방전과 같이 큰 사건만이 아닌, 옛 메이플의 검은보따리 테러 같은 한 번쯤 겪어봤을만한 사소한 사건들도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지 않는가?

RPG속 특별한 경험은 게이머라면 한번쯤 겪어보고 싶은 일이다.

 

재밌는 점은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또는 그때의 게임성이 좋았다고 해서 이런 경험들은 쉽게 쌓이지 않는다.

게임사에서 의도하지 않은, 유저가 써 내려가는 서사일 때 이 경험은 극대화된다.(이 부분은 추후 별도의 주제로 작성하려고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경험한 이에겐 특별한 추억이. 경험하지 않은 자에겐 자신도 겪어보고 싶다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추억과 선망은 곧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는 원동력이 되고, 다시 복귀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

 

MMORPG의 미래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과거엔 소셜을 위한 RPG.

현재는 소셜을 지워가는 RPG로 변했다면.

미래에는 다시 돌아가서 더욱 강한 소셜적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나와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소셜을 포기한 RPG로 흘러가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정답일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결코 좋지 못한 흐름이다.

모든 게임들이 언제나 안타만 칠 수는 없다. 게임을 5년 10년 운영하다 보면 암흑기가 한두 번쯤 오게 된다.

게임이 재미를 잃어갈 때. 유저들이 떠나지 않게 지탱해 주는 건 다른 유저와의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