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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서사 - 유저가 만들어가는 게임의 역사잡담/Game 2022. 4. 26. 22:58
게임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Howlogtobeat¹라는 사이트에선 게이머들의 플레이 시간을 취합하여 메인 스토리만 했을 때, 혹은 게임을 완전히 파고들 때 걸리는 대략적인 플레이 시간을 산출한다.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 20여개를 비교해 보았을 때 많아야 3~4시간정도의 차이를 보여줄 정도로 높은 정확도를 보여줬다.
이런 정확도의 비결은 콘솔 게임들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범위의 플레이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통계적으로 접근하면 대략적으로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을 확인해보면 콘솔 게임과 달리 플레이한 시간이 터무니없이 많이 차이난다.
생각해보면 당연할수밖에 없는 문제로, 10년간 플레이한 유저와 1년간 플레이한 유저의 편차는 매우 클뿐더러, 엔딩등이 없기에 사람마다 수백 시간에서 수천 시간까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게임 디자인 단계에서 콘솔 게임은 정해진 길이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재미를 느끼게 하도록 개발된다면,
온라인 게임은 가능한 오랫동안 플레이하도록 유지시키도록 설계된다.
물론 게임을 몇년이나 지속적으로 플레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어려운일이다.
게임사에선 계속해서 콘텐츠를 추가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콘텐츠를 출시하여도 유저의 소비 속도를 따라잡을순 없다.
콘텐츠의 부족은 곧 게임의 이탈로 이어진다
반복적인 노가다 콘텐츠의 추가는 소비 속도를 늦추기에 좋지만, 자칫하면 지루함으로 인한 이탈로 이어진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콘텐츠 가뭄에 대한 딜레마는 게임사가 아닌 유저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유저가 만들어내는 컨텐츠
콘텐츠가 오래될수록 유저들은 게임을 깊게 파고든다. 그리고 이때 아무도 생각지 못한 플레이 방식을 고안하거나 게임 시스템 속 허점을 발견하여 새로운 플레이를 발견하는 '창발/창의적 플레이'가 등장한다.
최근 LoL에서 현상금 시스템을 계산적이게 이용하여, 서포터로 설계된 잔나를 탑 라인에 보내는 전략²이나 게임 엔진의 특성을 이용해 트릭키한 이동을 보여주는 건즈의 사례가 각각 창의적, 창발적 플레이에 해당한다.
'창발/창의적 플레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고, 유저들로 하여금 현재 즐기는 플레이가 이 게임의 한계점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데, 이를 통해 게임은 고착화되지 않고 게임을 계속 연구하게 자극한다.
게임에서 사전에 준비한 스토리는 단순히 소모될 뿐이지만, 유저들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유저 서사'는
게임을 단순한 소비 매체에서 자신이 스토리를 창조해 내는 무대로 변화시킨다.
온라인게임에서 유저 서사는 다른 유저들과 상호작용하는 좀 더 예측 불가능해지며, 이야기를 공유할 다른 대상을 가지게 된다.
만약 서사를 공유할 유저가 몇몇이 아닌 수십, 수백 명의 집단이 되면, 마치 역사의 한 부분에 참여하는 것 같은 극적인 경험이다.
이러한 집단서사³는 경험한 이에겐 특별한 경험이, 경험하지 않은 자에겐 자신도 겪어보고 싶다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창발/창의적 플레이'나 '유저/집단 서사'는 별다른 콘텐츠 추가 없이도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적인 장치이지만,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에 가깝다 보니 게임사에서 강제적으로 발생시키기엔 어렵다.
그렇지만 유저들이 좀 더 이러한 자발적 콘텐츠 생성을 하도록 유도할 수는 있는데,
MMORPG의 경우 집단 서사를 최대한 유도하기 위해 대규모 PVP나 공성전 기능에 노력을 기울인다.
2) https://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11/?n=142621
3) 집단 서사라는 단어는 다음 칼럼에서 차용했다. -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49379
Twitch Plays Pokémon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는 지금은 대표적인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이지만 아직 국내에 많이 알려지기 전,
'Twitch Plays Pokémon'(트켓몬)이란 콘텐츠로 먼저 화제가 되었었다.
트켓몬은 기존 포켓몬 게임을 시청자 참여 형태로 변형한 것으로,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특정한 명령어(UP, RIGHT, A, B)를 입력하면 프로그램이 채팅을 읽어가며 게임을 조작하는 방식이다.
이 간단한 게임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게임을 클리어하는 내내 최상위권의 시청자 수를 유지했다.
다소 뜬금없이 트켓몬을 소개하여 의아해하겠지만, 트켓몬의 진행과정은 게임 속 서사 과정과 매우 비슷하며.
집단 서사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간편한 참여
시청자들은 단지 트위치에 접속하기만 하면 트켓몬이 진행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는데,
만약 트위치 계정도 있다면 채팅에 'UP'이라는 단어만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이 콘텐츠에 참여할 수 있었다.
트켓몬에 참여하는 유저들은 자신의 채팅이 화면에 보이며 게임에 적용되는 것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수만, 수십만 명이 보는 게임에서 자신이 내린 명령이 동작하는 것을 보는 건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러한 간편한 참여와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노출은 단순히 시청 중인 유저들도 게임에 참여하도록 유도했고,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은 수많은 사람과 함께 플레이한다는 느낌을 주며 더욱 몰입하게 하는 선순환을 발생시켰
다.
공동의 명확한 목표
트켓몬엔 '포켓몬을 클리어할 때까지'라는 단순한 목표가 있었다.
재밌게도 수백 개가 명령이 동시에 내려지면서 레드는 이상한 곳으로 가거나 수없이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이럼에도 17일 만에 클리어했다는 점은 놀라운 기록이었다.
타인과 협동하여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은 이제 뜻깊고 특별한 경험이이며, 게임 클리어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일어난 난관을 해결할 때 수천수만 명이 협동하는 과정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집단서사라고 하여 꼭 많은 인원일 필요는 없는데, LoL의 흥행 요소 중 하나는 랜덤으로 매칭된 5명이 '협동'하여 다른 팀을 이긴다는 '목적성'이다.
이러한 경험은 콘솔 게임과 비교했을 때 온라인 게임만이 가능한 강점과 일맥상통한다.
최소화된 개입
트켓몬은 잘못된 명령어가 입력돼도 옳은 입력이 월등하게 많다면 무리 없이 진행되었지만,
몇몇 구간에선 사소한 입력 하나만으로 수십 분의 노력을 수포로 되돌릴 수 있었다.
쉬운 참여와 수많은 유저라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방해하는 유저들이 등장했고, 제대로 플레이하길 원하는 유저들은 분개하며 이를 비난했다.
하지만 관리자는 이러한 유저들에 대한 제제를 하지 않았기에 특정 구간에선 몇 시간이나 소모되었다.
최소화된 개입 속에서 유저들은 자유롭게 플레이했으며, 오히려 이러한 허들의 존재는 한 단계 한 단계 클리어할 때마다 쾌감이 배가 되었다.
물론 중간에 진행 상황이 엄청나게 더뎌지자 기존 게임에 적용되는 명령어 말고도 무정부와 민주주의 명령어와 게이지를 추가하였다.
게이지바가 무정부 측으로 기울면 모든 입력 어를 받는 무정부주의 상태가 활성화되었으며, 민주주의 측으로 기울면 일정 시간 동안 받은 입력 중 중복이 가장 많은 명령어를 실행하는 민주주의 상태가 활성화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를 시작으로 무정부주의파와 민주주의파가 생겼으며, 평소 상황에선 자유를 원하는 무정부주의가 우세하고,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무정부주의가 열세로 몰려 민주주의로 변해서 해결하려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와우에서 일어난 '오염된 피 사건'처럼 흥미로운 가상실험이었으며, 게임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지속적인 기록과 밈의 생성
트켓몬은 24시간 라이브로 진행되는 게임임에도 매 순간 일어난 사건들이 시간별로 세세하게 기록되었다.
이러한 기록 덕분에 중간에 알게 된 시청자들도 진행사항에 대하여 금방 따라갈 수 있었고, 자신도 그 현장을 경험하고 싶어 트위치를 켜고 콘텐츠에 참여했다.
플레이하는 중간 재미있는 밈도 생겼었는데, '조개의 화석' 아이템은 게임 도중 모든 아이템이 버려졌음에도 버려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기에 하나의 종교처럼 취급받았다.
이러한 밈은 트켓몬을 플레이하며 다른 유저와 이야깃거리가 되며 게임 커뮤니티에 트켓몬을 소개할 때 재미있는 사례로 작성돼서 아직 트켓몬을 해보지 않은 유저들에게도 큰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기록들과 더불어 게임 속 밈의 생성과 확산은 게임을 아직 접하지 못한 유저들에게 흥미를 끌게 하고 쉽게 유입하도록 도와주는 가교가 되었다.
이런 비슷한 메커니즘은 이브 온라인에서 역시 사용하고 있다.
이브온라인에선 게임 내부에서 일어나는 유저들 간의 분쟁이나 이벤트 등이 모두 "뉴스"의 형식으로 다른 플레이어에게 전달이 되며, 큰 사건의 경우 단순한 뉴스가 아닌 트레일러급 영상으로 제작된다.
세세한 기록은 아니지만 유저들이. 혹은 단 한 명이 플레이라도 게임에 큰 영향을 끼쳤다면,
게임사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기록해 주는 것 자체로 유저들에겐 플레이 동기가 된다.
재방송..재재방송...
물론 트켓몬이 계속 순항한것은 아니였다. 위 요소들을 통해 포켓몬의 집단 서사는 꽤 멋들어지게 작동했지만. 2편, 3편으로 넘어갈수록 인기는 크게 떨어졌다.
시리즈는 계속 넘어갔지만 일어나는 사건들은 완전히 패턴화되었으며, 집단 서사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의 매력은 더 이상 없어졌다.
결국 처음에 비해 유저는 확연하게 줄었는데, 트켓몬은 유저가 적어질수록 플레이가 수월해지며 단조로워지며 이 때문에 유저는 더욱 적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사실상 이 부분이 게임으로 하여금 집단 서사를 강제로 발생시키기 어려운 이유인데,
집단 서사의 내용은 매번 달라야 하며 이는 게임의 특별한 개입 없이 유저들끼리 우연적으로 발생시킬 때 비로소 유니크해진다.
유저들은 언제나 서사를 꿈꾼다.
작년 말 Xbox에선 Xbox 시리즈의 역사를 담은 6편의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대부분의 내용이 흥미로웠지만 유독 이목을 끈 건 4편의 Xbox Live 부분이었는데, Xbox Live를 즐기는 50대의 유저들은 단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기 위해 이 서비스를 이탈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온라인 게임의 목표는 최대한 오랫동안 플레이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다른 유저들과의 추억을 쌓아가는 것은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나 역시 25년 이상 수많은 게임을 하며 수많은 경험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꼽자면 언제나 다른 유저들과 플레이했던 순간들이 우선적으로 생각난다.
길게는 20년 전 바람의 나라의 일본 침략부터 와우의 수장 파스, 위의 트켓몬까지... 다른 유저와 만들어가는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아쉽게도 유저층의 변화일지, 주류 게임의 변화 때문인지 최근 온라인 게임에선 점점 이러한 빈도가 낮아지고 있는데,
집단서사가 가장 발생하기 편한 MMORPG 장르의 쇠락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게임들은 점점 타인과의 교류를 줄여나가고 있다는점이 크다.
하지만 유저들은 언제나 집단 서사를 하길 꿈꾸기에, 이러한 서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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