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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플레잉을 막는 아바타잡담/Game 2022. 7. 24. 22:43
(영화/드라마 '빛의 아버지'에 대한 작은 스포 있음)
설국에서의 반팔은 부끄럽다..
얼마 전 '빛의 아버지'라는 영화를 봤는데, 꽤나 독특했다.
퇴직한 아버지에게 MMORPG 게임 '파이널판타지'를 소개해 주고, 자신은 아들임을 숨기고 몰래 아버지를 돕는 내용으로,
영화의 절반 정도는 실제 파이널판타지 게임 속에서 촬영했다는 부분과 영화 속 내용이 실화 기반이라는 것이 인상 깊었다.
재밌던 부분은 영화 중반 아버지는 게임을 그만두는 부분인데, 아들은 과연 어떤 이유 때문에 게임을 그만두었을까 추리한다.
아버지가 게임을 그만둔 이유는 다름 아닌 '장비' 때문이었다. 게임을 진행하다 실수로 겨울 배경의 설국으로 들어가게 되고,
코트를 입은 NPC/유저들 사이에서 반팔을 입은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그만두었다는 점이다.
( 원작의 글¹을 찾아보니 실제로도 아버지가 게임을 처음 이탈한 이유가 같은 이유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론 아버지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가며 제대로 RPG를 즐기고 있구나 생각했다.
나 역시 게임을 플레이하며 캐릭터의 의복을 꽤나 신경 쓰는 편이다.
와우에서 장비의 성능을 유지하며 외형을 변경할 수 있는 형상변환이 나왔을 때 캐릭터에 어울리는 무기 외형을 얻기 위해 수십 시간을 들였으며.
특성별, 마을용 형상 세트까지 따로 구비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외형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유저도 꽤 많지만, 캐릭터의 외형을 꾸미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콘텐츠다.
로스트아크를 죽이는 모코코
스마일게이트의 대표작 '로스트아크'에서 가장 유명한 마스코트라 하면 단연 '모코코'일 것이다.
맵 곳곳에 숨겨진 모코코 씨앗을 찾는 콘텐츠는 밈적 인기를 끌었고, 곧바로 마스코트화되어 각종 콜라보에 쓰이기도 했다.
모코코는 게임 내 아바타로도 제작되어 주요 이벤트 때마다 유저에게 지급하고 있다.
물론 좋은 의도로 배포하는 아바타이며, 특유의 기괴함?으로 각종 컷신들에 등장하는 것은 재밌지만.
모코코 아바타가 아크라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몰입을 방해받는 기분이 든다.
게임 속 스토리, 컷신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 눈앞을 지나치는 모코코들의 존재는 게임에 몰입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얼핏 별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빛의 아버지의 사례처럼 이런 디테일적 부분에서 게임에 몰입하기 어려움이 자연스런 이탈로 이어진다.
모코코 아바타를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대다수 게임에서 공통적으로 게임의 컨셉과는 무관한 형태의 아바타를 선보인다.
지금은 서비스 종료한 테라의 경우, 수영복 아바타의 매출이 BM 모델 자체를 바꿔버릴 정도인데²,
게임사의 입장에선 이러한 아바타들이 주요 BM중 하나이기에 수영복 아바타를 내놓는 걸 비난하긴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MMORPG들의 컨셉아트를 보면, 의복의 패턴 하나에도 신경 쓰며 세계관을 구축한다.
하지만 중세 배경 속 판금을 두른 보스를 앞에 두고 현대식 의복을 입은 캐릭터가 줄지어 서있는 걸 보면,
과연 온라인 게임에서 컨셉아트를 치밀하게 세워 나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결국 지금의 아바타 시스템은 변경이 필요하다.
Dress Code
우선적으론 세계관에 맞는 디자인의 아바타만 내놓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유저의 니즈가 확실하지 않으며 제작에 공수가 많이 든다.
고생하며 세계관에 맞는 의복을 구현하기보단. 현대식 수영복을 내놓는것이 제작도 편하며, 많은 게임에서 이미 인기가 검증되어 리스크가 없다.
세계관과 일치하는 아바타를 만드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이기에, 유저에게 의복의 다양화를 자연스럽게 요구시키는 것이 우선 단계이다.
와우의 형상변환 시스템은 장비의 성능 때문에 억지로 외형이 별로인 장비를 입는 문제를 해결했다.
만약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지역에 따라 외형이 자동으로 바뀌게 설계한다면..? 유저들에게 자연스럽게 외형 변경을 유도할 수 있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경우 온천지역에선 장비가 자동으로 가려진다.
이러한 방식을 대도서/필드 범위로 넓히는 것은 구현적인 어려움이 적으면서 BM적으도 더 나은 방식이 아닐까 한다.
만약 더 세분화하여 사막이나 바다 등, 지역에 따라 자동적으로 장비의 외형이 변경된다면 상당히 매력적인 시스템일 것이다.
유저가 지역별로 외형 프리셋을 미리 지정하도록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나 외형 아바타를 만들 때 지역에 따라 소매의 길이나 외형이 변하도록 여러 형태로 제작해두는 방식 등 제작 여력에 따라 여러 구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다.
게임에 대한 몰입과 RP
2021 로아온에서 금강선 디렉터는 콘텐츠 업데이트 기간 동안 다른 게임을 하고 와도 된다는 다소 재밌는 발언을 했었다.³
최상위층 레이드 유저는 콘텐츠 소모 속도가 빠르다 보니 타 유저들이 콘텐츠를 즐길 동안 기다려달라는 논지였는데,
결국 이런 부분이 레이드 위주 플레이의 한계가 아닐까 한다.
레이드 위주의 플레이는 콘텐츠가 소모되는 순간 플레이 이유가 사라진다.
게임의 콘텐츠 생성 속도는 유저의 소모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에, 플레이의 의미가 사라지는 공백 기간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이 기간 동안 게임을 그만두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반면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하며 즐기게 되면, 다른 유저와 즐길 거리를 끊임없이 만들거나 게임 속 세계를 깊게 탐구하며 이러한 공백을 메워간다.
빛의 아버지에서 겨울 지역에서 반팔을 입은 것이 부끄럽다고 한 것은 자연스러운 RP(Role-Playing)이다.
RP는 게임 속 세계를 진짜 세계처럼 대하고 몰입하여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해외에서는 RP서버나 개인적으로 RP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진짜 모험가처럼 이야기하거나, 갑자기 탈것을 소환하지 않고 마구간을 가는 등 진지한 플레이를 하는 건 다소 유난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레이드, 숙제 위주의 플레이를 하다 보면 내심 저런 RP를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느낀다.
게임의 몰입은 단순히 콘텐츠를 플레이하는 데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스토리, BGM, 구조물 등 다양한 부분이 모여 진짜 세계로 인식시키게 하며, 캐릭터의 외형 또한 이러한 요소 중 하나이다.
다른 부분들과 다르게 캐릭터에 대한 부분은 오롯이 유저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난제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방치하는 것은 RPG에서 RP를 버리는 것과 같다.
결국 유저들이 게임에 몰입하여 RP를 자연스럽게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앞으로 MMORPG들이 나아가야할 방법이 아닐까 한다
1) http://sumimarudan.blog7.fc2.com/blog-entry-1974.html
2) http://ndcreplay.nexon.com/NDC2015/sessions/NDC2015_00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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