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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Review

[Review]버드맨(Birdman , 2014)

by 김태현. 2018. 1. 29.


리건은 버드맨이라는 슈퍼히어로다. 


정확히는 슈퍼히어로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버드맨이라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연이었다. 



지금 그는 '퇴물'이란 단어가 완벽히 어울리는 한물간 배우이지만, 그는 이제 슈퍼히어로의 이름에서 벗어나,

연극을 통해 진정한 연기자로 다시 한번 명성을 얻고 싶어 한다. 






스포일러있음.






극중극 뒤틀기



연극 속 또 하나의 연극. 이러한 극중극 방식의 영화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는데, 바깥 부분의 극 역시 연극이란 사실을 부정하고 진짜 현실 세계인 것처럼 다룬다는 점이다. 버드맨의 외부 프레임 역시 진짜 현실을 모방한다.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연속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의 특징을 담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중 프레임의 경계를 미묘하게 비틀어간다.



영화 속에서 버드맨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하는 게 하나 있는데, 꾸준히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드럼라인이다. 

단지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배경음악으로 다룰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은 이 드럼 연주자를 영화 속에 직접 등장시킨다. 

처음엔 거리의 연주자로 등장하여 배경음악과 브로드웨이의 소리를 자연스레 연결하는 기법이라 생각했지만, 

두 번째엔 공연장 백룸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며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이 드러머의 존재로 인해 진짜 세계처럼 되어있는 바깥 부분 역시 하나의 연극으로 인식된다.


바깥 프레임을 극으로 변화시킨 이유는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는데, 공연 전 날 보드카를 마시는 리건, 가게 옆에서 한 주정뱅이가 맥베스의 명대사를 읆는다.


"차라리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


인생이란 그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자신을 뽐내지만,


안달하는 사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배우인 것이다."


바깥 프레임이 아무리 극이 아닌 척, 진짜 현실인 마냥 표현해봤자 의미 없다. 

인생 역시 하나의 무대이며,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사라지는 배우에 불과할 뿐이기에.



극이 모방하는 현실 역시 하나의 극에 불과하다는 아이러니를, 영화는 드럼라인과 맥베스의 명대사를 통해 드러낸다.








버드맨의 < 변신 >


어느 날 그레고리 잠자는 잠에서 깬 자신의 모습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있음을 깨닫는다. 가족들은 그의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경악하지만, 곧 돌아올 거라 믿고 평소처럼 대해준다.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깨닫고 그를 무시하며, 끝내는 죽은 그를 내다 버리고 없었던 사람 취급하며 이사를 간다.


 누구나 알고 있을만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내용이다. 이 소설엔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카프카는 처음 책이 발행될 때 표지에 벌레를 그려선 안된다고 당부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필자가 제일 타당하다 생각하는 것은 잠자가 실제로 벌레로 변한 것이 아닌,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벌레로의 '변신'은 노동력의 상실로 인한 가정 내 최고 권위자라는 위치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로의 추락을 과장적이며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버드맨은 카프카의 <변신>과 묘하게 닮았다.



관객들은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주인공을 보며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버드맨은 진짜야?"



마치 관객을 농간하듯 버드맨이 실존하는 것처럼 묘사되다가도, 다른 인물이 나타나면 감쪽같이 사라지며 혼란을 더해간다. 

영화 초반 주인공의 숨겨진 능력처럼 보였던 버드맨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의미를 더해가는데, 


버드맨은 리건의 영광스러웠던 시절이자, 지우고 싶은 과거이며, 쉬운 성공의 길, 리건의 페르소나가 만들어낸 그림자, 내면과의 대화를 위한 통로 등... 여러 의미를 가져간다. 이후 실체화된 버드맨은, 리건을 유혹하며 현실을 비틀어간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절정으로 뽑는 장면인 리건이 옥상에서 떨어지다가 날아오르는 장면. 이 부분에서 버드맨에 대한 혼란 역시 극대화된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날아온 것이 아닌 택시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며 관객들은 버드맨이 실존하지 못하는, 그저 상징의 덩어리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 부분은 잠자가 벌레로 변신했다는 비현실적 부분이 아닌, 변신으로 인한 잠자 주변 세계의 변화 쪽이다. 


버드맨에서 정말로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것은 버드맨이 실존하는가의 문제가 아닌, 리건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그를 대하고 있는지가 아닐까.







버드맨이 가지는 의미



 버드맨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부분 이후, 영화 속에서 버드맨은 그저 하나의 상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순탄하게 흘러간다. 리건은 무사히 연극의 1부를 마치고, 전처에게 못했던 고백을 하고, 진짜 총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 연극의 2부와 인생을 동시에 끝맺히려 한다.



 그리고 빵!



 하지만 끝난 건 연극뿐 그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영화 속 연극의 마무리는 최고의 호평을 받았지만 인생이란 연극을 극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리건. 

그에게 다시 버드맨이 나타나고, 다시 한번 현실을 뒤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 장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주목해야 될 부분은 버드맨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등장했던 버드맨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앞서 말했듯 영화 속 버드맨은 등장할 때마다 특별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에 볼일을 보고 있던 버드맨은 무슨 의미였을까. 



이것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풀어줄 실마리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