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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컨택트(Arrival, 2016)잡담/Review 2018. 2. 1. 21:40
컨택트라는 제목, 외계인과의 교류라는 내용.
처음 영화의 제목과 내용을 봤을 땐 97년도에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줄 알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제목은 'Arrival'. 도달을 의미하며,
스토리 역시 외계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전혀 달랐다.
스포일러 있음
단순한 SF 영화인 줄 알았는데, 영화 속에 담긴 메시지는 꽤나 무거웠다.
동명의 영화가 외계 생명체와 조우를 모티브로, 과학과 종교의 경계를 비틀어버리는 과감한 시도를 했던 SF의 왕도라면.
이 영화는 정반대로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이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장르가 SF임에도 외계인이 중요한 영화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자는 인류가 지적 생명체인 걸 다른 생명체에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들과, 외계인과의 접촉을 종교적 간증을 하듯 풀어냄으로써 종교와 과학을 연결하는데 포커스를 맞췄다면,
후자는 타 문명과의 처음 교류했을 때 커뮤니케이션의 방법. 언어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 그리고 원형적 시간선을 도입하는 시도를 했다.
사실 이 영화는 SF 영화에서 필수적인 과학을 과감히 빼버린 영화다.
그렇다고 전투신이 있는 영화도 아니며, 외계인과의 만남은 몇 평 남짓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영화는 정적이며 음울한 분위기를 띄우지만, 조용하고 세밀하게 관객을 직사각형의 창안으로 끌어당긴다.
다른 문명과의 소통
어느 날 전 세계 상공에 등장한 12개의 미확인 비행 물체,
미국의 군대는 언어학자인 루이스를 찾아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윽고 루이스가 만난 건 마치 거대한 문어처럼 생긴 외계 생명체.
처음 그녀는 말로써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려 하지만 이윽고 문자를 이용하는 게 더 좋다고 판단하고,
바디랭귀지와 문자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영화속에서 외계인과의 교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지구 어딘가에 있는 미지의 부족과 서로 언어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대체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도 이안의 내레이션과 함께 이 과정을 빠르게 요약한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가지는 힘이다.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빠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경고한다.
언어는 사고방식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으며, 이해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오해라도 있으면 안 된다고.
사실 절대다수의 SF 영화에선 항상 언어에 관한 문제를 회피하곤 한다.
'트랜스포머'처럼 외계의 진보 기술이 10초 만에 지구의 언어를 모두 익히던지
아니면 '에일리언'처럼 애초에 대화가 안 통하던지.
컨택트는 소통의 문제를 정면에서 받아친다.
마치 아기를 가르치듯 처음부터 시작하고, '인간'과 '루이스'의 차이를 알려주기 위해 보호복을 벗는 위험을 감수하는 등,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갈등의 이유도 소통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마작이나 체스같이 게임을 통한 소통은 그 목적성 때문에 의미가 변질된다.
인류가 이들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 '지구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무기를 제공하는 것- 을 들었을때,
인류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진다.
영화 속에서 언어는 굉장한 힘을 가진다. '무기'라는 한 단어 때문에 인류는 서로 연락을 끊고 외계인을 공격하려 한다.
그리고 이 공격 직전의 상황을 막는 것 역시 한 문장의 유언이다.
영화는 소통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전달한다.
현재 인류가 겪는 분쟁들이 그저 소통의 문제이며 올바른 소통을 통해 이를 막을 수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이.
시간은 평평한 원이다.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다소 파격적인 사상을 가져왔다.
삶의 시작과 끝은 연결돼있으며 우린 똑같은 삶을 무한히 반복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할 행동들은 수많은 미래의 내가 이미 했었던 행동이며,
내가 하는 행동들은 수많은 과거의 내가 똑같이 따라 할 행동이다.
이 사상은 극한의 허무주의로 해석되곤 한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삶을 개척하려 해도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이미 짜인 틀에 따라 움직이는 거라면?
우리의 삶은 꼭두각시에 불과한 허무한 인생이다.
하지만 니체가 의도한 바는 이런 허무함이 아니다.
내 행동을 따라올 과거의 여러 나를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오늘 하루를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면, 무한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 긍정이라는 지표가 남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루이스는 헵타파드의 언어를 익혀가며 자신의 미래와 연결된다. 영화 속 최대의 반전이었던 부분은 그녀가 꿈에서 본 기억들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회상(영화의 내용을 고려했을 땐 예지보단 회상이 적절하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깨달았을 때 그녀는 영원회귀의 원 위에 서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이안과 결혼할 것을
한나라는 이름을 가진 딸을 낳을 것을
이안이 자신과 헤어지게 될 것을
딸이 희귀병으로 죽을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상실의 아픔에 대해 고민하고 헵타파드들이 지구를 떠난 직후 이안에게 물어본다.
' 만약 당신이 미래를 알고 있으면 바꾸겠느냐 '라고.
고백할 순간만 노리고 있던 이안은 별생각 없이 '매 순간의 감정을 좀 더 표현하려고 노력할 것 ' 이라고 대답한다.
이안의 대답은 영원회귀의 핵심이다.
'Amor Fati'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깊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면 된다.
그의 대답을 듣고 그녀는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결혼을 하고 딸을 낳는 것을 선택한다.
루이스의 행동은 일반적인 관념으론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삶 속 상실을 넘어선 강한 긍정.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초인'의 경지에 도달(arrival) 한다.
영화 속에서 헵타파드들은 3000년 뒤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연 인류보다 월등히 앞선 종족이 어떻게 인류에게 도움을 받는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그 이유에서 인지 헵타파드들은 인류를 발전시킬 '도구'를 가지고 지구에 찾아온다. 도구는 '언어'였고 새로운 언어는 곧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버린다.
'도구'의 목적이 인류를 영원회귀의 원위에 놓이게 만드는 것이라면,
인류 모두가 초인에 도달할 때쯤이면 그 어떤 것이라도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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