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 이후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인 너의 이름은.
도쿄에 사는 타키와 시골에 사는 미츠하가 간헐적으로 몸이 뒤바뀌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혜성처럼 지나버린 이야기
이 스토리는 1편짜리 영화가 아닌 12화 정도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처음으로 생각했던 점이다. '여운이 남아 좀 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라기보단,
과하게 축약된 이야기에 대한 공허함.
예고편을 통해 주인공들의 몸이 뒤바뀐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뒤바뀌고 일어나는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래 한 곡과 함께 짤막짤막하게 지나쳐버리는 해프닝들.
지나쳐버린 이야기들이 너무나 아쉽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혜성처럼 지나가버렸다.
이러한 아쉬움은 이후 장면들에서도 계속되며 몇몇 장면에선 개연성이 부족해지기도 했다.
100분이란 시간 안에 이 영화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이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반드시 넣었어야 할 장면과 빼도 됬을 장면에 대한 선택이 조금 빗나가지 않았나 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후 다른 미디어믹스들을 통해 영화에서 빠진 내용들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보통의 관객들은 시리즈가 아니고서야 한편의 완성된 이야기를 원하지, 다른 매체를 통해 직접 완성해야 하는 수고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영상미와 OST가 그려내는 깊이.
처음『언어의 정원』을 봤을 때 영화의 내용보다도 더 마음에 남았던 건 압도적인 영상미였다. '비 오는 날의 공원'이라는 느낌을 워낙 생생하게 전달한 덕분에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 했다.
이러한 영상미는 『너의 이름은.』 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며 황혼이라는 찰나의 모습, 색감 가득한 혜성의 묘사 등 보기만 해도 감탄을 자아내는 작화는 한층 더 깊은 몰입감을 준다.
겨울왕국 같은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아님에도 OST 선곡의 타이밍은 그런 장르와 견주어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정확하게 필요한 순간에 흘러나오는 노래. 영화를 보고 나면 OST를 부른 RADWIMPS 의 노래를 챙겨들어볼 정도로 OST가 전달하는 영화의 느낌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너의 이름은.』속 작화와 OST는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을 뛰어넘어 영화적 깊이에 한 부분으로 작용하여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무스비란 얽힘
의외로 눈 여겨본 장면 중 하나는 쿠미히모라는 끈을 만드는 미츠하의 모습이었다. 신발을 만들었던『언어의 정원』의 주인공. 신발은 내포하는 의미와 함께 히로인을 연결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용하는데, 미츠하의 쿠미히모 역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의 새로운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랄까.
영화 속에서 우연성이 꽤나 짙게 나타나는 편인데, 이러한 우연성들은 '무스비(結び)'라는 말에 의해 운명으로 탈바꿈한다. 작중내에서 모든 것의 이어짐, 연결성을 뜻하는 무스비. 미츠하의 손에서 여러 실들이 얽히고 얽혀 하나의 끈이되는 모습은 무스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이 쿠미히모는 타키와 미츠하 사이의 실체화된 무스비로 작용하는데, 이로 인해 말도 안 되는 우연적 장면들이 운명으로 승화되는 점은 꽤나 인상 깊었다.
이름. 그 의미에 대하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강력하다. 이름은 곧 그 대상의 정체성이며 하나의 각인이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이름을 뺏기고 센이란 이름으로 일하는 치히로를 보며 하쿠는 나직이 경고한다
"치히로를 잊으면 너는 사라져"라고.
영화 초반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옅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영화 속에서 서로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잊혀 가는데, 이 망각의 마지막 보루는 상대방의 이름이다.
상대의 이름을 잊는 순간 동시에 상대에 대한 기억도 모두 사라지며, 반대로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는 순간 모든 걸 기억하게 된다.
이러한 상징성을 영화 전반적으로 서서히 전달시키는데, 관객들은 이름이 기억 안 난다고 절규하는 타키를 보며 그가 기억을 잃었음을, 미츠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기억을 모두 되찾았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채게 된다.
이후 서로의 이름을 망각한 상태지만, 무스비로 인해 계속 연이 닿는 모습은 둘에 대한 애달픔의 감정을 좀 더 심화시킨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자 타키와 미츠하가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
그 마지막 순간, 영화의 제목엔 단순한 의문형을 뛰어넘어 하나의 마침표가 찍힌다.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을 거쳐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는 점점 대중성에 가까워지고있다.
아직은 아쉬운 스토리텔링임에도 『너의 이름은.』이 전달하는 매력으로 인해 그의 다음 작품이 빨리 나왔으면 하고 안달하게 만든다.
'잡담 >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view]버드맨(Birdman , 2014) (0) | 2018.01.29 |
---|---|
[Review]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2017) (0) | 2018.01.09 |
[Movie Review] 더 헌트 (The Hunt, 2012) (0) | 2017.03.19 |
[Movie Review] 립반윙클의 신부(リップヴァンウィンクルの花嫁) (0) | 2017.01.07 |
[Book Review]노르웨이의 숲 (0) | 2016.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