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Review] 립반윙클의 신부(リップヴァンウィンクルの花嫁)
국내에선 『러브레터』 로 유명한 감독인 '이와이 슌지'. 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주인공인 나나미가 SNS에서 만난 서비스맨 아무로에게 일을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아주 작은 실수, 일상이란 궤도를 서서히 이탈해가는 주인공. 어느 순간 깨닫고 보니 이미 어찌하지 못할 지경까지 치닫는 이야기는 자주 볼 수 있는 플롯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늪에 빠지는 장르'라고 부르는데 영화 초반부를 보며 이 영화도 그런 장르려니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단한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가는 영화가 아니다. 의지할 가족도, 직장도 없는 주인공의 일상. 이미 늪에 빠져있는 나나미는 단지 SNS 속 친구라는 밧줄에 이끌려 또 다른 늪으로 이동할 뿐이다.
영화는 일상과 비일상의 연속으로 진행된다. 일상이 깨지며 비일상이 되지만, 비일상은 곧 새로운 일상으로 변해가고, 새로운 일상이 되어갈듯할 때 다시 깨져버림의 연속.
잘못 디디면 더 깊은 늪으로 빠지는 현실 속에서, SNS 친구가 던져주는 밧줄은 유일하게 의지할 곳이기에 마냥 이끌릴 뿐인 나나미. 그녀의 모습 속엔 현대인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듯하다.
클래식이 담아내는 아이러니
참 클래식이 많이 나온다. 그것도 결혼식에나 자주 들릴법한 클래식들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축복받는 순간으로 여겨지는 결혼식. 결혼식 때 쓰이는 클래식들 속에는 숭고함과 황홀함이 섞여있다.
초반부 결혼식 장면에서 클래식이 나올 땐 그러려니 했지만, 이 장면 이후 클래식이 나오는 장면들은 특이하다.
클래식이 특이하게 쓰였던 부분은 나나미가 집을 나설 때, 그리고 후반부에 몇몇 인물이 나체로 오열하는 장면에서 쓰인다.
이 두 장면은 전반적으로 잔잔한 이 영화 속에서 감정선이 폭발하는 장면들인데, 정작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그 속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클래식.
장면 속 처절한 감정과 상반되는 모습의 아이러니는, 상황에 맞지 않으면서도 분위기 전체를 휘어잡는 클래식으로 인해 더 심화시켜버린다, 보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를 장면들. 이 장면들을 보면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앵글 속에 담긴 나나미의 세계
영화 초반 대부분의 장면은 나나미에게 집중되어있다. 미세한 표정의 변화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해서 보여주는데, 남들과 같은 앵글에 잡히는게 드물다.
몇번의 비일상을 통해 점점 다른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나나미, 그녀 카메라의 앵글은 좀 더 멀어지며 대부분 주변 인물들과 함께 잡힌다.
마지막 장면에선 나나미를 잡고 있던 앵글이 점점 멀어지며 나나미가 살고 있는 곳 전체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앵글이 보여주는 건 나나미의 표정이 아닌 그녀가 품고 있는 세계의 크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SNS를 통해 결혼 상대를 구했던 좁디좁은 나나미의 세계에서, 세상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나나미의 세계.
카메라의 앵글은 나나미의 세계를 오롯이 담고 있었다.
립반윙클과 캄파넬라. 둘의 여행기
유령들의 술을 마시고 잠들고 일어나니 20년이 지나버린 립반윙클,
조반니와 함께 은하철도를 타며 여행하는 캄파넬라.
20년이 지나버린 세계에서 립반윙클은 우여곡절 끝에 20년 뒤 세상 속에 정착하며,
캄파넬라는 조반니와 은하 철도를 타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지만 친구를 구하려다 죽고 만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 속 인물들의 닉네임이었던 립반윙클과 캄파넬라의 의미는 꽤나 무겁게 다가온다.